. 너의 이름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지 한참 고민하다 결국 안녕이라는 말로 안녕을 건네. 어떻게 지내니. 거울 속에 내 몸을 보는 것처럼 너에게 안부를 물어보게 되네. 만약 언어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 마음을 전하게 될까.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음을 건넬까. 유월의 바람을 타고 창 안으로 들이치는 저 빛은 무엇을 마음이라 여길까. 우리가 마음이라 여기는 것들이 만나면 그것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나는 부단히 잊어서 미래가 되었으니 궁금한 게 많네.
우리가 나눠지던 순간을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나에게 미래라는, 너에게 과거라는 이름이 주어지던 날. 우리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헤어지고 있다는 것을 넌 알고 있을까. 우리는 헤어짐을 시작했기에 너는 나에게 도착하는 중이고, 나는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네. 나는 이제 우리 사이에 발신자와 수신자가 구분이 가질 않아. 네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것은 지나간 게 아니라 지나가는 중이지 않니. 어느 방향으로든 말이야. 글은 계절처럼 계속되니까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어떤 말은 말하지 않아도 어느새 우리에게 닿아 스며들어 있고.
너는 그날, 나에 대한 글을 쓰려다 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냥 함께하고 싶다며 소파에 누워버렸지. 그러다 낮잠을 잤고. 네가 열어둔 창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풍경을 건드렸고 맑은 소리가 울렸고 너는 깼고 노트북 하나를 들고 카페로 향했고. 얼음이 녹아 밍밍한 아메리카노를 입에 머금고 네가 나를 떠올렸을 때, 옆에 있던 사람은 그런 말을 했어. 나도 몰입해서 마음껏 연기해보고 싶은데 내가 그만큼 예술가는 아니니까.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이는 그런 말을 했지. 그건 관객이 보고 느끼는 거야.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야. 너는 그냥 마음껏 해. 그거면 된 거야. 그들은 그렇게 떠들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너는 남겨진 의자들을 바라보았지. 그리고는 네가 쓰려다 결국 쓰지 못한 문장들을 떠올렸지. 나는 너를 겪어온 미래니까 네게서 쓰일 모든 문장들의 총합을 보았지. 그게 시시한 낮잠처럼 보이는 것도 보았지. 하지만 그것이 결코 시시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 아니 모르지. 우리는 많은 시간을 사유하며 지냈어.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대해. 그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야. 그것이 모두 같다 하더라도, 우리의 이름이 틀렸다 하더라도. 우리는 헤어짐은 가치 있었어. 가치가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그럼에도 가치를 믿는 연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몰입해서 가치를 믿어버리게 된 배우가 될 만큼.
너는 그렇게 썼어. 우리가 지금의 차원 너머를 감각할 수 있다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하나의 순간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눈과 손과 심장을 하나의 몸으로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봉합. 영원을 놓아주고 영원에 닿아버린 우리의 순간들.
너는 나를 떠올리다가 그 문장들을 지워버렸어. 주머니가 텅텅 비어서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싫은 아이 같은 표정으로. 그런데 있잖아. 단 한 줄도 못써도 괜찮아.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도 괜찮아.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아도 괜찮아. 대단한 글을 쓰지 않아도, 틀린 글을 써도 괜찮아. 쓰는 일을 놓아버려도 괜찮아. 너로부터 발현될 문장들은 모두 이미 너에게 쓰여 있어.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글을 쓰렴.
나는 너에게 천천히 스며들고 싶어. 나는 너를 보는데 너는 나를 모르니까. 내가 갑자기 다가오면 너는 무섭지 않을까. 있잖아. 사실 나는 네 안에 있어. 너는 계속 모르면서도 네 안의 미래와 함께하고 있는 거야. 나를 모르고도 나와 함께 하고 싶다고 군더더기 없이 내뱉어주어 고마워. 우리는 창을 열고 낮잠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여백에 쓰고 싶은 걸 쓰자. 그리고는 오가는 바람에 편지를 부치자.
아주 오래전에 불기 시작한 바람이 지금 여기 도착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바람이 우리를 쓰다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