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이제 김지연 작가의 <공원에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림: 전 여기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기현과 나의 관계, 진짜 깜짝 놀랐어요. 하하, 일반적인 연인이 아니라 불륜이었다는 게.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라는 게 와닿는 상황이고, 근데 그걸 이해하는 나도 싫은 거 있죠.
욱, 솔: (끄덕끄덕)
림: 저도 이미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말하면 나한테 너는 뭐 잘한 게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는 게 슬펐어요.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에게도 이미 내재화된 시선들이 있다...
욱: 쉽게 말하면 ‘그래도 싼 여자’라는 비난이겠죠.
림: 피해자를 ‘그런 일을 당할 만했다’라고 프레임을 씌우는...
욱: 주변의 많은 맥락들을 소거하고 그저 둘이 불륜이라고 해도 두 사람의 관계에서도 차이가 나잖아요. 남자에 대해서는 능력 있네, 라고 쉽게 말한다거나.
림: 아, 너무 싫어요.
욱: 그런 꼬리를 무는 말들을 차단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다가 결국 터트린 게 비명에 가까운 육성, 소리잖아요. 언어가 아닌, 언어가 없는 세상에 대해 궁금해한 것처럼 히스테리나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도 나오잖아요. 그런 장면이 생각이 났어요. 뭐 옛날에는 히스테리가 여성의 자궁 안에 있어 가지고 어쩌고...
림: 하, 프로이트.
욱: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동시대성의 감각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김멜라의 <저녁놀>에서 철학 책을 전복하는 순간에서도 그랬고요. 답답함에서 벗어나는 비명의 장면이 막혀 있던 게 소설 속에서 탁 터져 나오는 절실한 장면이잖아요. 주인공은 그 비명 이후에 기현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혼자서 다시 공원에 가고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좋았어요. 개가 달래주고, 아이가 달래주고, 잔잔한 결말인 것 같은데 다시 앞에서 나온 들개를 조심하라고 하고. 들개라는 위해를 끼칠 것 같은 존재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이 여성의 삶에서 진짜 위해를 끼치는 건 남성들이잖아요. 그것도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현실 내에서 관계를 친밀하게 맺고 있는 사람들이고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 같다’는 말에서 ‘개’는 뭔지. 그런 언어의 지점들에 대해서 사유하게 만드는 결말이어서 좋았어요.
림: 저는 중간에 사전 찾아보면서 남자, 여자에 대한 속담이나 이야기를 찾아보는데, 거기서 작가의 생각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거든요. 화자가 아니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뒤에 ‘개 같다’라는 표현에 대해 서술한 방식을 보니까 앞에서 그런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화자가 있어야 이런 생각까지 도달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혼자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 혼자 풀었던... 그런 지점이 있었습니다.
욱: 은솔씨는 어땠어요?
솔: 저는 우선 기현이 하는 말을 너무... 잘 썼다고 생각했어요. (욱: 너무 현실적으로 상처 내는 말이어서.) 기현이 하는 말들이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 같은 말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비명이 나오는 위치가 적합한 타이밍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나는 비명이 질러본 적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고요. 동시에 차마 말하지 못한 언어를 ‘비명’이라고 명명하는 부분에서 이 소설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이 인물이 공원에서 폭행을 당하기 이전에도 버스에서 어떤 사건을 겪었다는 점에서 장치를 한 번 더 더한 게 좋은 포인트였다고 생각했어요.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걸 계속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몰입을 돕고, 생각도 여러 차례, 여러 각도로 하게 만들고요. 소설에 나오는 개도 일상에 되게 많이 녹아있잖아요. 욕으로서의 ‘개’, 동물로서의 ‘개’.
훈: 저는 <공원에서>가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는 소설이라 생각했어요. 다양한 존재들이 오갈 수 있는 공원이 소설의 배경이고 그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혐오 범죄가 잘 설정이 되어서요. 근데 이게 설정이라기보다 실제 현실이 그러니까. 그래서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아요. 또 이 소설은 마지막에 비명을 발화하고 개에 대한 단어를 전복시키잖아요. <저녁놀>에서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면 여기서는 같은 단어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개 같았다’가 되니까 되게 힘 있는 결말처럼 느껴졌어요.
솔: 저는 결말에서 좋았던 문장이 결국 이 사람이 사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문장이 좋았어요. “문득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의 문장을 통틀어서 가장 좋았던 문장이자 한 줄의 힘이 큰 문장이었어요. 감동을 받거나 삶을 깨닫게 하는 장면은 다른 소설에도 있었지만, 이건 한 줄로 잘 표현해 준 것 같아요. 힘든 상황을 겪을 걸 알지만 살아가고 그런 굴레 속에서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문장 같아서. 이런 설정이 들어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훈: 김지연 작가의 소설집을 읽었는데, 소설에서 내가 죽을 이유는 너무 많지만 살아야 할 아주 작은 사소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살아가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떠오르네요.
욱: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 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어떤 감정은 불쑥불쑥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저는 이 장면이 되게 솔직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논리가 쌓이기 보다 탁 터져 나오는 부분이 좋았던 게 극복해 내고 싶은 만큼 좋아한다. 복수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때려서 복수하는 게 아니라, 나는 너를 패지 않을 거야. 그런 마음이 이 사람의 마음에 쌓여서 그런 삶을 감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막연한 정신승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이 윤리적인 관점에서 도덕적으로 똑같이 진흙탕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주인공이 그 사람을 찾아서 복수하는 이야기도 희열이 있겠지만 작가가 그걸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까 드라마 이야기를 했지만, 드라마가 너무 납작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고구마와 사이다로 대변되는. 저는 그런 서사가 아니어도 된다고 봐요. 주인공이 살아가는 의미를 다짐하는 순간을 보여주면서 내가 받은 피해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위해를 끼치는 들개에 대해 구분을 짓는 게 아니라 의문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런 감각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피해자지만 내 피해에만 얽매이지 않고 타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 그런 미묘한 관계성을 다루는 지점도 필요한데 말이에요.
림: <저녁놀>에서처럼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종의 배제 같은 걸까요.
솔: 배제라기보단 누적 같아요. 배제는 없던 일로 치부하는 건데 화자는 이 사건을 잊지 않고, 동시에 강아지를 쓰다듬는 감각도 잊지 않고. 삶의 온도 차를 견디어 나가는 사람 같아요.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지만 그 분노를 잊지 않고 그 온도차를 견디는 게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욱: 무언가를 쉽게 없앨 수도 있는 세상을 너무 현실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꾸준히 견디고 실천하는 태도.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현과도 잘 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림: 과몰입하게 되는 소설인 것 같아요. 너무 현실적이기도 하고. 앞서 이야기가 나온 지점도 ‘나라면 안 그랬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진이 화가 나는 지점과 강아지를 만져서 화가 풀리는 지점도 저와 너무 닮은 거예요. 그런데 좀 슬펐던 지점은 공원에서 폭력을 당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남자는 때려도 나는 때리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저는 아팠거든요. 맞았을 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는 나도 똑같이 때려서 대응을 해야 하는 거라고 전 생각 하거든요. 어쩌면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연구에서는 납치됐을 때, 절대로 범인의 아지트까지 끌려가지 말고 죽어도 저항하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나온 폭행은 그런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가 떠올라서 만약 저게 현실이라면 수진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차마 남자를 때릴 수 없다는 게 내 의지보다는 나에게 쌓인, 여성에게 쌓인 사회적인 편견, 억압의 누적으로 하지 못한 거란 생각이 들어서. 불같이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인 수진이 어떤 상황에 너무 놀라서, 아니면 그런 때를 놓친 분노들이 후반에 비명으로 터져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욱의 말을 듣고 나니까, 어쩌면 제가 너무 작게 읽었나 싶기도 해요. 대욱처럼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내 삶에서 그들과 똑같아지지 않는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방향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 배경이 현실적이었던 건 맞지만 여기 나오는 인물은 용기를 더한 인물 같았어. 단단한, 새로운 인물상을 작가가 만들려고 했다.
욱: 피해자 다움을 거부하는.
솔: 분노하기도 하고 삶에 만족하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게 약간 되게 칼을 갈고 있는 사람 같은, 그게 완성된 건 아니고 현재 진행형의 상황인 것 같아.
훈: 은솔이가 이 화자가 칼을 갈고 있다는 말에 좀 덧붙이자면, 앞에 언급했던 거부나 배제, 혹은 수용 같은 단어를 ‘보류’로 말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 보류하는 태도가 칼을 가는 것처럼 되게 반짝이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화자는 남자를 죽이고 싶지만 죽이진 않잖아요. 그 마음을 바라보고 나에게 표현을 하고, 더 나아가 화자가 실제로 하는 일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고 아이한테는 말하지 않고 개를 쓰다듬는 거죠. 일어나는 것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보며 신중하는 태도.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그런 태도가 주인공을 엄청 강인하게 느끼게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욱: 참혹한 일들을 털어놓지 않는 것도 어른으로서의 태도,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되게 슬펐어요. 여성 커뮤니티에 대한 니즈도 많잖아요. 생산적인 걸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있음’ 자체가 필요한 순간들을 생각하게 돼요. 모두를 위한 공원에서도 배제되는 사람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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