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욱림솔훈은 왜 글을 쓰나요?
욱: 저는 왜 글을 쓰는지 이걸 진짜 물어보고 싶었어요.
림: 맞아요, 왜 글을 쓰는지.
욱: 저부터 말하면 저는 제가 어떤 세계를 항상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세계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걸 조금씩 다른 말로 다르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풍경만 평생 그리는 화가처럼요. 그렇다고 해서 그 화가의 그림은 모두 똑같기만 한 걸까요? 팔레트 안에 이 색깔도 저 색깔도 다 비슷하고 다 비슷한 듯한 풍경을 그리는데 그걸 다 모아놓고 보면 또 하나의 세계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저는 단순한, 레이어 하나, 모노톤으로 된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런 감각을 글로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감지하고 있는 지금의 세계에서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그건 시로 조금씩 조금씩 쓰고 있고요. 제 글은 누군가한테는 매번 똑같은 시일지도 모르고, 누군가한테는 매번 같은 세계라 다른 곳의, 다른 방식의 글을 보고 싶어 할 수도 있는데, 저는 제가 그런 것에 별 욕심이 없어요. 다른 작법을 연구하거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쓰거나, 글쓰기와 다른 무언가를 결합을 해서 글 아는 방향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심이 지금은 없어요. 나중에 생길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조금씩 바뀌는 세계와 미미한 풍경을 감지하고 싶고, 그걸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요. 하지만 여러분이 계속 말해 주는 것처럼 시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미지나 심상이 있는데 그 지점은 제가 확실히 넓혀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책을 만들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가 바라보는 세계를 넓히거나 다른 차원으로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조금은 하고요.
림: 어떤 걸 쓰고 싶은지 잘 얘기를 하신 것 같아요. 그러면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욱: 그래서 제가 똑같은 걸 쓴다고 생각하면 가감 없이 말해주시고, 그렇지만 당연히 글을 잘 썼네 못 썼네도 해 주시고, 세계에 대해서 뭔가 발견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을 해줘도 좋아요.
솔: 이거 되게 중요한 포인트다. 대욱 씨의 글을 해석할 관점을 얻었어.
훈: 응응….
(림: 웃음)
훈: 그러니까. 우리가 글쓰기 모임을 2년 가까이 했는데, 어떤 관점에서 각자의 글을 보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안 잡힌 것 같을 때가 있었어.
욱: 그런데 여러분들이 뭔가를 잡아주지 않아도 돼요. 비평은 사후에 엮어서 어떤 세계다, 하고 봐 주는 거고요. 오히려 그런 것보다 지금처럼 한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는 게 감사하고… 그거만 있으면 돼요, 사실. 그 순간에 기대 세계를 조금씩 더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솔: 그래서 일부러 문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랑 글을 나누고 싶었던 것도 있는 건가요.
욱: 네,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쓰면 시인 누구 같다 하잖아요. 유림 씨도 많이 들어 본….
림: 저도 많이 듣고 (웃음) 많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웃으며) 죄송합니다.
(훈: 웃음)
욱: 그게 좋은 의미일 수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누군가의 키즈처럼 부르는 표현일 수도 있고요. 영훈 씨도 창작 수업에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있지 않나요.
훈: 음, 맞아요. 창작 수업에선 항상 많이 듣는 것 같아요.
림: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뭔가 ‘아, 여기서 그럼 내가 다르게 가져가야 할 건 뭘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거든요. 이미 있는 시장이라면 내가 뚫을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누구 같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으면 듣기 싫을 수도 있죠.
욱: 그런데 저는 그 시장이 딱 누군가의 무엇이라고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세상에 물감이 지금도 이렇게 많은데 계속 새로운 색깔 물감 나오고… 조금씩 조금씩 다르잖아요. 색조도 하늘 아래 같은 색 없다고 하면서 다 다른 것처럼요.
림: 네 맞아요. 다른 것들에 좀 더 집중해야 이것과 뭐가 좀 더 달라질 수 있는지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림: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생각이 동일한 것 같은데, 항상 글이라는 세계는 도피처이자 현실과 다른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게 조금 안 좋은 걸 수도 있겠지만, 현실과 글의 세계를 분리시킴으로써 얻는 안정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걸 꿈꾸는 사람이기에 환상적인 것을 지향하는 편이에요. 그 비일상을 글에 담고 싶고, 시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그럴 수는 없겠지만 위안이나 행복 같은 것을 좀 얻어갈 수 있었으면, 그리고 좀 더 잔잔한 곳이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제가 쓰는 시를 읽고 누군가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욱: 완전 정반대인 것 같아요.
림: 네 맞아요.
욱: 그러니까 유림 씨의 글은 평화롭고 잔잔한 곳이었으면 좋겠고 비일상인데, 저는 일상인데 (림: 맞아요) 평화롭지 않고 고요하지 않고 어디 깨져있는 것 같고.
림: 대욱 오빠가 일상에서의 삐끗하는 그 순간을 표현한다면 저는 일상 아닌 것 같은 세계인데 일상인 것 같아,라고 느끼는….
욱: 그런데 시간은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
림: 맞아요. 현실 감각이 없어지는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일을 좋아하고.
욱: 매번 세계관 만드는 사람.
림: 네, 추구하는 것 같아요.
훈: 저는 왜 글 쓰는지 얘기하려면 책 얘기부터 가야 할 것 같은데. 옛날에는 문학을 아예 안 읽었어요. 어릴 때는 저는 문학의 재미를 진짜 몰랐고 자기 계발서 위주로 읽었는데, 왜냐하면 그런 게 실질적으로 내 삶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어릴 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지? 나는 누구지?’ 이런 고민을 할 때 책에서 도움을 얻었어요. 그러다 살면서 고민이 해소되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비문학에서도 인문학 책을 읽게 되었고요. 인문학을 통해서 철학적인 생각도 해 보고. 세상이란 건 뭘까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 재밌었고요. 근데 그럴 때도 소설은 전혀 안 들어왔던 게, 저는 소설을 읽으면 시간이 아까운 거야. 소설의 재미를 진짜 몰랐던 거죠.
림: 진짜가 아닌 이야긴데 이게 도움이 되나, 이런 생각도 충분히 들 수 있죠.
훈: 이건 허구의 이야기고.
욱: 시간 때우려고 읽는 거고.
훈: 저는 지금도 비문학만 읽는 사람들을 이해해요. 제가 옛날에 그랬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내가 발현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냥 소설을 봤는데 소설 속 인물한테 감정이입을 하게 됐어요. 그 지점에서 삶에 무언가를 얻어가는 게 생기고, 그런 걸 떠나서도 그때부터 소설이 너무 재밌고 간지럽고 그런 거죠. 그중에서도 퀴어 소설을 딱 읽게 되면서 ‘어, 나도 써보고 싶다. 이거 그냥 내 이야기인데? 나도 일기 쓰듯 쓸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솔직히 먼저 들었어요. 되게 자만심 가득한 (다 같이 웃음) 생각이지만 그땐 그랬죠. 그냥 일기 쓰듯이 쓰던 걸 처음과 끝이 있는 이야기처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강의도 찾아보고 실제로 써 보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쓰면서 배우고 느껴지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고, 나는 내가 바라보는 세계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구나, 표현하고 싶어 하는구나. 내가 이렇게 세상을 보는데 너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니 하는 걸 소설의 언어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퀴어 소설집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까 내 세계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감정이 해소가 되기도 하고 다른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죠. 지금도 퀴어 소설집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그보다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보지 못한 세계를 만들고 싶은 게 더 커진 것 같아요. 그래서 SF 문학을 생각하게 되고. 비거니즘에 관련된 문학이 많이 없으니 퀴어의 영역과 비거니즘의 영역을 상상의 세계에서 잘 조합해 소설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솔: 진짜 계속 변화하네. 나는 처음에 내가 느끼는, 그렇지만 뭔지 모르는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나면은 이런 건가 하고 짐작할 수 있게 되어서 일기를 쓰다가 그 일기를 블로그라는 조금 더 공개적인 장소에 쓰다가 ‘내가 글을 못 쓰지는 않는구나’라는 점을 알았고, 그래서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어. 어떻게 보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찾게 되고, 글의 세계를 알게 된 건 오로지 여기 안에서 글쓰기 모임을 하는 2년이라는 시간 덕분인 거지. 요즘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 같아. 세상이 주목해 주지 않는 부분에, 너무 평범한 일상에 되게 큰 의미가 담겨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너무 큰 어떤 덩어리들이 그 사소함을 가볍게 밟아버리니까 나는 그런 기록을 글로 남기고 싶구나 생각하게 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