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너랑 내가 정독 도서관에 처음으로 함께 가본 날이었어. 그곳엔 긴 복도와 낮은 산책로, 미로 같은 계단과 크고 작은 창들이 곳곳에 있었지. 너는 거기가 사진을 찍고 싶은 곳이라 말했고 거기엔 책도 많았으니까. 그곳에 가면 나도 너처럼 사진도 책도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런 마음으로 널 따라갔던 것 같아. 너 역시도 사진을 다시 찍고 싶어 질지도 모르고. 너는 내가 걷게 될 길을 미리 밟아보고도 다시 돌아와 나와 함께 발맞춰 걷는 사람이었을까. 너는 그곳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도서 대여 카드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어. 나는 그런 너를 보면서 너를 닮고 싶었고, 나에게도 네가 닮고 싶은 면이 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하곤 했어.
그때 내가 도서관에 가져갔던 책을 너는 기억할까. 나도 한동안 잊고 지냈어. 내가 그때 읽었던 책을. 그때 너는 그곳에서 무얼 했더라. 아마 시집 한 권을 끼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역사에 대한 글을 읽었던 것 같아. 나는 그 옆에서 롤랑 바르트가 쓴 <사랑의 단상>을 읽었어. 그날 찍은 사진 속 코르크 노트를 보니 내가 무얼 막 적었더라. 오랜만에 그때 책을 읽으며 썼던 그 노트를 꺼내보았어. 네가 답장해주었던 편지들보다도 더 오래 덮어둔 것들이었어.
거기엔 그런 필기들이 있었어.
나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
삶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사랑의 실패는 흡사하다. 그것은 모두 같은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당연하다.
나는 이해하고 싶다. 사랑의 실존은 보지만 본질은 보지 못한다.
더 이상 해석하고 싶지 않다.
그때의 나는 무슨 마음으로 그런 메모들을 적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한강 공원에 가 나무 아래 반그늘에 앉아 사랑을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하곤 했어.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학교 도서관에 가 사서에게 사랑에 단상이 있나요?,라고 정확히 물었고, 그런 시간들을 가진 후에는 독서 모임에 가 네가 없는 곳에서 너를 대입해보며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상상계 같은 단어를 이해하려 애를 썼어. 그때보다 더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말들이 노트에 여전히 가득하다.
너는 언어와 사랑 중에 어떤 게 더 크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 네가 만들어준 대여 카드는 잃어버렸지만 책이 사고 싶으면 대여섯 권을 척척 사고 책장에 꽂아두곤 해. 도서관에 가 책을 빌리고 읽히지도 않는 글을 끙끙 읽다가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그날 찍은 사진을 보니 나의 사진은 형편없었구나. 근데도 너는 왜 네게 사진을 꾸준히 올리는 계정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던 걸까. 꾸준히 무언가를 담아내면 그 무언가는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랑을 언어로 담아내려는 모든 시도들 끝에서 서로는 좀 더 가까워질까 아니면 보다 멀어지게 될까. 그날 네가 도서관의 낮은 지붕을 바라보는 나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고는 짓던 미소를 어렴풋이 기억해.
있잖아. 가끔은 모든 것이 지나간 게 아니라 지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해.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말은 아니야. 다만 끝이라는 게 정말 있나? 영원한 건 없어도 영원이 사라지는 순간은 아주 길 수도 있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사진으로 세상을 문지르고, 온통 글을 써 내려가다 모두 지워버리고, 어느 날엔 도서관이나 공원을 걷기도 하면서 조금씩 사라지는 연습을 잘게 반복할지도 모르겠어. 네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