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신록이 눈부신 요즘, 어느덧 1 0 0 4는 4월호의 마지막 주제에 닿았습니다. 우리는 '취향'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쓰고 나눠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어떤 그녀를 떠올리며, 누군가는 싫은 것에 대하여 썼고, 누군가는 계절마다 돌아오는 노래에 대해, 또 누군가는 삶의 끝에서 떠올리게 될 노래를 적어보았습니다.
취향으로부터 시작한 욱림솔훈의 글이 여러분에게 봄바람처럼 닿아 마음을 물들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저 영훈의 글입니다.
예전에 어떤 장의사가 항상 어린 왕자 책을 품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정리하는 일과 어린 왕자를 들고 다니기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러던 그를 시간이 한참 지나 우연히 전혀 다른 장소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는 더 이상 시체를 정리하지도 어린 왕자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사람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는 기분은 꽤나 선명해서 나는 그날의 다른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내가 죽을 때는 어떤 식으로 장례를 치르게 될 지도 알 수 없지만 만약 내가 죽고, 죽은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노래를 언제나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다닌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선선한 가을 공기에 낙엽이 굴러다니는 어느 길을 떠올렸다. 그곳엔 높은 은행나무가 가득하고 벤치가 하나 놓여있고 거기엔 어떤 노인이 앉아있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 노인을 오래 보다 보면 들려오는 노래가 있다. 고요히 가라앉아야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 그것은 노인의 허밍이다. 노인의 시간이고 노인이 통과했던 모든 것들이다. 연필깎이. 하모니카 케이스. 물방울과 깃털의 형형한 내려앉음. 실패한 소설. 끝내 안에 남아 있도록 지켜낸 말 같은 것들. 노인은 모든 것을 지나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안식을 마주하고 입을 부드럽게 다문 채 넌지시 콧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노인을 소년의 시절로 데려간다. 소년은 씩씩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소년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노인이 된 소년을 그려보았다. 그 노인은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노인의 얼굴은 소년 때처럼 맑아진다. 그것은 다시 소년의 얼굴. 그리고 소년이 사랑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을 담고 있다.
삶의 끝에서 이 노래로 응원과 평온과 안녕을 건네고 싶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보고 있자면 자꾸만 그들의 어린 얼굴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들이다. 얼굴에는 지난 시간들이 깃들어 있다고 길을 걷다 누군가 써놓은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오늘은 더 이상 잘 기억나지 않는 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나는 그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의 조금 얕게 패인 볼에는 영안실이 있고, 검은 눈에는 행성 B612가 있다는 것뿐이다. 내가 아는 그와 내가 모르는 그를 지나 그도 언젠가 오랜 이별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의 플레이리스트에 조용히 이 노래를 넣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