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해 쓰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품는 대신 불안함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날마다 미래를 생각하면서도 미래에 대해 뚜렷하게 적을 수 있는 것이 없는 시간 속에서 결국 내가 적을 수 있는 말은 불안함 밖에 없었다. 미래를 향해 품은 나의 불안과 비관을 잔뜩 적어 내린 글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좋으니 솔직하게 적어보라는 글벗들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미래를 떠올릴 때마다 찾아오는 불안함에 대해 적으며 이 글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래는 알 수 없어서, 정해지지 않아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에는 이상한 지점에서 눈물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울음을 터트렸던 순간들은 미래를 기다리는 불안을 견디지 못해 눈물로 표출되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녔던 피아노학원에서는 수업이 끝나면 학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기억 속의 그날도 학원 홀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학원 차를 기다렸다. 분명히 차가 올 시간이 되었는데 차는 오지 않았고, 안쪽 교실에서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초조함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홀을 지나가던 한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 놀라 왜 우는지를 물었고, 학원 차가 늦는 것뿐이라며 사정을 설명하고 나를 다독여 주셨다. 하지만 나는 왜 고작 학원 차를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해서 눈물이 났는지 부끄러웠고 더욱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다. 그 기억을 시작으로 학원 시계를 보며 나를 데리러 오기로 한 아빠나 엄마, 삼촌이 도착했다는 전화가 울리기를 기다렸던 순간과 종종 눈물로 다가올 일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던 모습들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미래가 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에 여전히 눈물을 쏟았다. 수학학원에서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났던 날, 이 문제를 다 풀어낼 때까지 집에 갈 수 없다는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진 적 있었다. 문제를 다 풀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 어느새 훌쩍 기울어져 버린 시곗바늘을 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눈물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꾹 참으며 주책맞은 눈물을 원망했었다.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생님은 평소보다 조금 늦었을 뿐 나를 집으로 보내주셨다. 학원 계단을 한 걸음씩 천천히 내려오면서 마음을 얼어붙게 했던 두려움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기다리던 것들이 조금 늦는 건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오기 마련인데도, 앞으로 나아가는 두 발이 묶였다고 느껴지거나 그다음 한 발을 뻗을 곳이 보이지 않으면 끝없이 불안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앞으로의 일들이 막연하고 불안해지는 순간마다 눈물이 먼저 차오르고 만다. 차오르는 눈물을 쏟아내기 전에 달래서 삼키는 일은 수월해졌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기대보다 눈물이 먼저 차오르는 것은 여전했고, 이제는 그 불안함이 내게서 떨어트릴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다가올 미래 앞에서 번번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눈시울을 붉힐 수 없어서 나는 차츰 미래를 떠올리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미래에 대해 오래 고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현재에 더욱 몰입했다. 하루를 살아냈다고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무언가 더 하려고 시간을 쪼갰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던 모습 때문인지 주위 사람들에게서 너는 참 바쁘고 알차게 사는 것 같다며 그래서 너의 미래는 걱정이 되지를 않는다는 고마운 말을 자주 듣지만, 사실은 미래를 너무 걱정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멈출 수 없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이렇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의 행동은 어쩌면 미래를 회피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현재는 결국 미래로 나아가기에 최선의 정면 돌파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현재 내게 주어진 것에 몰입하는 순간이 모이면 괜찮은 미래를 만들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늘 불안해하는 동시에 불안을 잊으려 하며 밀려올 미래 앞에 현재를 보며 서 있다.
최근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마저 놓쳐 불안함 속에 나를 휩쓸려 보낸 적이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어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불안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불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미래를 향한 마음을 활짝 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불안과 우울이 끝나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길 바랐던 적이 있었다. 아주 단단해진 주인공이 더는 악에 지지 않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속의 모습처럼. 그 이야기들 속에서는 아주 큰 어둠이 몰려올 때, 온 힘을 다해 모은 큰 빛으로 어둠을 내쫓고 세계는 평화를 되찾으며 끝이 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빛을 그만큼 증폭시키는 힘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다는 것을 불안이 나를 온통 뒤덮었을 때 알게 되었다. 즐거웠던 추억, 소중한 사람의 위로, 따뜻한 말 그런 것들이 주위를 은은하게 밝히며 내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믿게 하지만, 어둠을 영영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현실의 해피엔딩은 조금 걷혔던 어둠이 다시 빛과 웃음 사이를 파고들어 머지않아 불안과 눈물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 무수한 반복을 견디는 것이 현재이자 과거였고 미래라는 것을 불안 속을 떠돌다 온 마음이 알려주었다.
미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든지 간에 어김없이 밀려와 현재와 과거로 부서진다. 과거가 된 미래는 자신이 불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미래를 만나 자신이 불안한 미래였음을 깨닫기도 한다. 미래는 과거가 되는 순간에도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그런 미래를 어떻게 몇 글자에 적을 수 있을까. 미래를 보는 것이 서투른 나는 미래를 쓰려다 지우고 말았다. 대신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의 마침표 바깥에서 불안인지 기대일지 모르는 떨림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