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나요? ‘잘’이라는 한 글자에 담을 수 없는 숱한 마음이 있음을 알면서도 이렇게 물어요. 때론 진부한 인사와 으레 건네는 안부 같은 것들이 어떤 진심보다 위안을 가져올 때도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지내고 계시다 이메일을 보고 계시다면, 그렇게 지내온 것만으로도 잘 지냈다 말해 주고 싶어요.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계시는지요. 저는 연말이면 더는 미룰 수 없는 모임에 다녀오다가 새해에 가까워질수록 혼자 있으려고 해요. 오직 혼자, 아무도 없는 시간에 있으려고 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습관은 아니고, 고독을 찾아다니는 능동적인 몸짓은 더더욱 아니지만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땐 창 밖에 눈이 오기도 했고 바람이 불기도 했고 이따금은 햇빛이 거리에 쌓인 눈을 데려 가기도 했어요.
혼자 가만히 있으면 혼자인 마음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어요. 단 며칠뿐인 순간으로 오랜 마음을 다 알 수는 없겠지요. 마음을 보고 있대도 마음을 볼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저도, 읽어 주는 분도 지금 이 글 앞에서 마음에 무엇인가 생겨났다가, 잊혀져 있던 무언가가 나타났다가, 새로 생긴 마음에 가려져 영영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도 하겠지요. 이 글도 그렇겠지요.
구체적으로 살고 싶어
젓가락, 접시, 소시지, 오렌지주스, 달걀...
그런 것들이 될 거야
사물이 된다면
달그락거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은 언제나 숨겨지고
수평선은 어둠을 끌어올리지
어둠에서부터 파도가 밀려오는 거야
눈물이 나는 건
물새떼처럼 알 수 없고
구름처럼 멀리 있는 것들 때문이지
가라앉아서 숨을 쉬자
물고기가 된다면
수영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삶은 사라지게 될 거야
아무것도 슬프지 않을 거야
*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박시하, 문학동네.
눈이 내린 풍경을 바라보며 이 시를 떠올리면 사라지는 것이 더는 슬프지 않게 돼요. 눈은 도착하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하기에 눈을 보며 강아지는 짖고 사람들은 눈을 뭉쳐 각자 만들고 싶은 모양을 만들고 저마다의 집으로돌아갈 것을 알면서도 맞잡은 손을 꼭 쥐고. 시를 읽으며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해가 찾아오고 그러다 어느새 지나온 시간과 외워둔 문장과 지나간 사람을 잊어버리고.
햇빛은 다정한 적이 없어도
이런 겨울이라면
피부
때로는 작은 것이 모여 더 무수해지곤 했다
빛으로 지은 건축물처럼
그때에는
아주 가끔 같이 있다가 / 종종 / 혹은 영영 / 외따로 있게 될 것이다
무대 인사
* 대욱의 메모장에 있던, 시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적었던 기록 일부.
이 기록은 시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시가 아닌 글이, 그도 아니라면 글이 아닌 낱말로만 남았을까요. 그것을 헤아리는 일은 유효할까요. 알 수 없어요. 그러나 기약 없는 기록을 해나가며 이룰 수도 있는 순간을 찾아 당신께 보내드리고 싶어요.
당신의 새해에는 어떤 목표가 있나요. 목표 없는 삶에 불안해하거나, 으레 하는 계획을 세워야만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요. 혹여 그런 기분이라면 무용한 마음과 누구도 알지 못하고 어쩌면 나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달라졌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음을 말해 주고 싶어요. 그렇게 우리가 유독 오래 머무르게 되는 풍경 앞에서, 마음 한구석에 무엇인가 차오르는 기분을 발견할 수 있다면 기쁠 거라고 믿어요. 아프지말고 잘 지내요. 진부한 끝인사처럼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만나요. 그때에는 제가 머물렀던 순간을 보내드릴게요. 그러면 그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