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해가 가기 전 이렇게 다시 안녕을 건네게 되어 기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저는 어떻게 지내냐는 말을 들으면 고장이 나곤 하는데요. 그럼에도 대답을 해보자면 저는 적당히 지냈어요. 적당히라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지만, 적당히라고 믿으며 지냈어요. 정말 그게 다지만. 그럼에도 당신과 글로 만나는 이 순간에 그 적당히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풀어보자면.

종종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고요. 휴일 아침이면 소금빵을 먹기 위해 동네 골목을 걸어가는데, 걷다 보니, 걸으면서 보다 보니, 오래된 동네에 정이 들었고요. 역으로 향하는 아침 출근길,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길목을 지나며 빛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찰나의 생각을 자주 했고요. 바쁘면 끼니를 거르고 배고플 땐 밥을 정말 가득가득 먹었고요. 처음으로 건강 검진을 받아봤는데 키가 조금 더 자라서 신기했고요. 선물 받은 식물에 물을 주면서도 잎이 삐죽 자라나는 것이 사람 마음 같아서 두렵기도 했고요. 저 스스로를 낭비하기도, 그러다가 애처롭게 여기기도, 그러다가 단순해지기도 했고요. 언젠가 타이페이에 가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하나만 더 얘기해도 되나요? 어젯밤 꿈에선 정말 서럽게 울었어요. 목 놓아 엉엉. 한 친구 앞에서 울었는데 울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이제 너를 예전처럼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래서 지금 너무 슬프다고.

그때 친구는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이었지만 모든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끝내 나를 토닥여주며 아주 옅게 웃어 보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잠에서 깼어요. 창문 사이로 하얀 빛이 방 안 곳곳을 비추고 있었어요. 꿈이었구나.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여전히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있고, 이 꿈은 곧 영원히 사라지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나 꿈에 대해 생각할수록 꿈은 더 짙게 남았고 이제 편지에도 썼으니 더 짙게 나만의 방식으로 이 꿈을 간직하겠지요. 시간이 흐르면 다시 옅어지기도 하겠고요.

당신은 어떤 순간에 이 편지를 읽게 되나요.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어디서 어느 시간에 무슨 마음으로 우리가 보낸 글을 읽을까. 그러다 어떤 마음이 자라나고 졌을까. 그 마음으로 무엇을 했을까 혹은 하지 않았을까 같은 것들.

삶이 바쁘잖아요. 그러면서도 항상 무언갈 놓친 것만 같고. 그런 삶 속에서 가끔씩 당신이 이 메일함을 열어본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한편으로 읽히지 않은 채 남겨진 메일들은 얼마동안 봉인될지 떠올리거나, 당신이 메일을 열어보는 어느 적절한 순간이 아주 오랜 미래여도 좋으니 그 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메일이 당신에게 도착한 것만으로도 생경하다고 그래서 충분하다고 나만 들리게 말하고.

저는 당신이 저의 글을 마음껏 써주었으면 해요. 때로는 제가 아닌 것 같고, 때로는 저보다 더 저인 것 같은 저의 글을 마음껏 훔쳐보고, 좋다고 혹은 별로라고 여기고, 소리 내어 읽거나, 똑같이 따라 쓰거나, 첫 문장만 읽거나, 스팸함에 넣거나, 당신의 일기장에 마음에 드는 부분만 쏙 빼다 놓거나, 읽고 용기를 내어 답을 건네거나, 답장 대신 어떤 마음을 전하거나 전하지 않거나. 단 조금은 우습고 비밀스럽고 심심하게. 은은한 온도로.

저는 아주 오랫동안 읽고 쓰고 싶은 사람이지만, 제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없어요. 저도 변하고 꿈도 변하고 마음도 세상도 글도 다 변하니까. 올해는 글을 많이 쓰질 못했어요. 먹고 자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가득 찬 하루가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빛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마음을 소설에 옮기고 싶어요. 과거를 되짚어보며 사랑의 다양한 모양을 발견하고 싶고, 수많은 아픔을 그저 보려는 문학과 우리를 아주 작게 만드는 과학이 만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는 이미 도착해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도착한 이 메일처럼. 머나먼 곳에서 어느 적절한 순간 그 이야기가 써질 순간을 적당히 기다리면서. 제가 마음껏 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순간이 오기까지 당신이 언제고 나를 떠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다 다시 다른 모양으로 만나기도 하고, 어쩌면 영영 이별하게 될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이 메일은 언제나 당신의 메일함에 도착해 있고, 언제든 당신이 이 메일을 열어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저는 어젯밤의 꿈으로, 떠나는 이를 보며 옅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오늘 아침은 정말이지 차갑고 깨끗하고 개운했거든요.

올 한 해, 느리게라도 글을 쓸 수 있게 함께 해준 당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요. 꾸준히 쓰고 메일로 종종 찾아뵐게요. 그때까지 안녕을 빌게요,라는 말을 이렇게도 전해봅니다. 숱하고 귀한 아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