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 편지를 보내드리네요. 저는 바쁜 하반기를 보내다가 아주 여유로운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선 퇴사를 했고요, 제주도로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회사에 다니며 퇴사하는 순간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늘어지게 쉬고 열심히 여행을 다녔어요. 덕분에 저를 더 잘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시간을 허투루 쓰는 데 재능이 있더라고요.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친구들을 열심히 만나고 막상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고요하게 보냈습니다.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충분히 즐겼거든요. 그 기억을 곱씹으며 집에서 2023년에 쓸다이어리를 찾아봤어요. 그러다가 남은 12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직 12월은 1주일이나 남았는데 마음은 벌써 내년에 가 있더라고요. 이건 12월에 못할 짓이다 싶었습니다.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려놓고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니 새해를 기다리다니. 12월의 존재의의가 마치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굴고 말았지 뭐예요.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보다 즐거운 12월의 날들이 있었는데 말이죠. 이 메일이 가는 27일도 12월의 아주 멋진 날이고요. 아주 오랜만에 구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는 날이니까요.
12월에는 밤하늘에서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밝고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을 만났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집 앞에 쌓인 눈을 쓸고 언 손을 녹이며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트리와 붉은 리본으로 장식된 길을 걷다가 저녁을 먹고 읽고 싶었던 책을 오래 읽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드라마 시리즈를 다 본 날도 있었고 친구들과 눈이 쌓인 도시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12월을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네요.
우리는 종종 너무 환한 빛을 쫓느라 작은 빛을 놓치곤 하죠. 저는 아주 많이 그래요. 자주 잊어버려도 자꾸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글로 남기려고 해요. 하루를 미소로 기억할 수 있는 어떤 순간들을요. 그 순간들은 크리스마스 같은 커다란 이벤트일 수도 있지만눈이 내렸다, 같은 우연에 기댄 이벤트일 수도 있고 케이크를 먹었다, 같이 정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어요. 서러워 눈물이 줄줄 나는 날에도 밤에 잠들 때는 그날 있었던 작은 빛 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그래도 나쁘지 않은 날이었어, 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때 이 글이 옆에 있어 여러분에게 위로가 된다면 저는 행복할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멋진 날을 선물할 수 있겠죠.
하루를 마무리하고 이제 잠들 준비를 하는 당신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미래는 미래에 두고 오늘을 잘 안아줍시다. 분명 좋은 꿈을 꾸거나 좋은 잠을 잘 거예요. 푹 쉬어요. 내일의 어느 멋진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