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첫 메일링 편집을 맡아 독자분들께 욱림솔훈의 글을 소개해 드릴 수 있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 :)
새해가 시작된 지도 두 달이 지난 지금, 아직은 2023년이 어색한 분들도, 익숙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첫 글로 “시간”에 대해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특정한 시점을 정하지 않고, 글 형식도 자유롭게 두어 시간에 대한 넷의 온전한 시선을 담아보았습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욱림솔훈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요? 시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담긴 글이 여러분의 시절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길 바라봅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대욱의 글과 대욱의 글을 읽고 제가 남긴 말을 전합니다.
주제: 시간에 대해서
타이백과 휴대용 와인잔 | 대욱 영훈 유림 은솔
타이백과 휴대용 와인잔
가고 싶었던 전시가 있었는데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지나버리는 전시가 많아서 가려고 마음먹은 전시를 플래너에 적어 놓고 매일 확인하는데도 이상하게 잘 안 될 때가 많다. 그러니까 이상하다기보다는, 집에 있고 싶어서 그날따라 비가 와서 이번 주에 약속이 너무 많아서 같은 이유들인데 어떻게든 나가려고 하면 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잘 되지 않을 때라고 쓰기엔 너무 복잡해서 이상하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만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정확하게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글은 정확하게 쓰면 쓸수록 정교한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이렇게나 흐트러진 일들이 많은데 정교하게 일하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그런 마음은 얼마나 잘 섞여서 구분할 수나 있는 걸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나눈다고 한들 정확하지도 않을 것이고 알게 된다고 해도 좋을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과거는 무엇, 현재와 미래는 특정한 형태의 선 혹은 끝없이 수렴하는 흐름이란 비유를 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한때 시간이었던 것이 묻어 있는 것만 같은, 얹혀져 있는 것만 같은 것들이 자꾸 떠오른다. 작년에 끝나버린 전시를 기념하며 굿즈를 증정하는 이벤트 게시물을 보았다. 신청만 하면 선착순으로 타이백과 휴대용 와인잔을 주는 이벤트였다. 천가방은 꽤 있지만 타이백은 하나도 없고 와인을 좋아하긴 하지만 제대로 된 와인잔도 없으니 나들이를 갈 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받은 물건은 얼마나 오래 손에 쥐고 있게 될까. 하루에 잠깐 타는 차는 몇천만 원인데 매일매일 잠드는 매트리스는 왜 그렇게 싼 걸 쓰냐는 영업사원의 멘트에 바로 비싼 매트리스를 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그러면 매번 무언가를 만질 때마다 함께 있는 시간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겨울인데도 내년 여름휴가에 입을 수영복을 사고 싶다 꼭 한 치수 작은 사이즈의 옷을 알면서도 사는 기분 같은 것도 있고 때로는 여기 있는 사물이 다음을 데려오기도 한다면 시간에 대한 글은 갖고 있거나 갖게 될 물건 갖고 있었는데 어디론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타이백 안에 책과 와인잔과 도시락을 챙겨 넣고 공원에 가서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을 생각했다. 빠뜨린 것은 없을까. 또다른 미래를 가져다주는 물건이 아마도 있지 않을까. 아마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공원은 달아나지 않고 그곳에는 타이백과 휴대용 와인잔을 챙겨온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같은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아이폰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데 그걸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다. 중요한 건 휴대폰의 기종이 아닌 그 휴대폰을 감싸는 케이스일까 그러니까 오래 고민해 공들인 무언가가 타인의 것과 다르지 않을 때 시선이 머무르게 되는 걸까. 어떤 외국인은 한국에 와서 사람들의 옷이 온통 검은색이라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달라보이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검은 패딩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봐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겉옷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묻어 있을까.
타이백은 예뻤고 와인잔은 실용적이었고 우리 집엔 천가방도 컵도 여러 개가 있다. 하나쯤 더 있는대도 티가 날 만큼 방이 비좁진 않지만 나보다는 더 오래 곁을 내어주는 사람에게 물건이 간다면 더 좋은 일 일 것이다.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나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새것처럼 보이는 물건보다는 닿는 사람의 시간이 보이는 것이 좋다. 오래 펼치고 읽어 바래진 책이라거나 손잡이가 맨들맨들한 지팡이나 거의 다 쓴 핸드크림 그리고 리한나의 청바지 같은. 갖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이 데리고 와서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나을 때도 있을 것이고 모든 미래를 열어두는 것만큼이나 소거해가는 순간도 그만큼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좋아하는 천가방 안에 책과 돗자리와 텀블러를 챙겨 공원에 갈 것이다. 그곳에는 자신이 아끼는 가방을 챙겨 나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타이백과 와인잔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2022. 02. 14 시간에 대해서 | 타이백과 휴대용 와인잔
대욱 쓰고 드림
대욱의 글을 읽고 - 은솔
글쓰기 모임을 하고 나서 세계를 만난다, 넓어진다는 표현을 처음 이해하게 되었는데, 나는대욱의글을읽을때그의시선을따라더멀리 나의 세상밖으로한발자국나아간기분이든다.
이번글을읽으면서는타이백과휴대용와인잔만큼나에게있어선명한시간을간직한물건들을떠올려보게되었다. 그러나선명한순간을꺼낼수록이상하게과거에분명히지나왔지만어느샌가잊어버린시간을 더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기억해내고싶은어떤순간이있는데, 머릿속에자욱한안개가있어어떤윤곽도보이지않고결국아무것도떠올릴수없었다. 이제껏한번도생각해본적없었던것같은데, 아마도평생지금보다나이를먹는다해도내가기억하는시간보다기억하지못하는시간이더많지않을까. 언젠가이글을적던순간도안개속으로사라질것이다. 운이좋으면다시기억이떠오를수도있지만, 그렇지않아도아무렇지않을것같다. 타이백과휴대용와인잔을본찰나에그것을들고피크닉을가는시간을그려보았듯이잊힌시간에도분명히무언가묻어있었을것이다.
대욱씨가썼던다른글이떠오른다. 잊히거나사라지는것이괜찮다고했던글. 어떤 순간은 정말그래도괜찮을것같지만, 그런말을건네는그의모습은조금더오래시간속에남을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