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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도로를 지나다 보면 정거장처럼 볼 수 있는 귤 가게에 은솔과 함께 들렀을 때였다. 제주에 왔으니 귤을 먹어야지라던가, 귤을 먹어야 제주에 온 거지라는 믿음들을 굴리며 욱림솔과 함께 먹을 귤을 넉넉히 사둘 생각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천혜향 있나요,라고 물었고 그 많은 귤 중에 천혜향인 것은 물이 고인 백록담에서 천혜향이 내게 준 그 환한 감동을 방법은 모르겠지만 유림과 대욱이 조금이라도 맛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사실 귤의 다양한 이름은 잘 알지 못했으니까. 아무래도 가장 많이 듣고 익숙했던 천혜향을 찾으며 입에 침을 고였던 것이다.
가게 앞 팻말에는 레드향, 천혜향, 한라봉, 카라향, 황금향 등등 다양한 귤의 이름들이 두꺼우면서도 제각각의 글씨체로 큼직하게 쓰여 있었는데 새삼 정말 다양한 종류의 귤이 있구나 하며 소매상이 건네는 천혜향과 카라향을 차례로 입 안에 넣었다. 천혜향은 크고 두껍고 가득 찬 모양에 비해 껍질이 아주 얇았고, 탱탱한 속을 베어 무는 순간 마치 터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단 물이 입 안을 온통 적셨다. 카라향은 천혜향보다 작고 겉모양이 울퉁불퉁했는데 속껍질은 굵고 그 속살은 좀 더 건조하고 말라 보였다. 쉽게 내어주지 않을 것 같은 속을 물었을 땐 신 맛이 가장 먼저 혀를 누르고, 차차 단 맛이 은은하게 났는데 천혜향을 먹고 먹어서 그런지 그 신 맛마저도 좀 밋밋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이 입 안에서 짓이겨지는 동안 그 다양한 이름들의 시작이 오렌지, 혹은 탠져린, 어쩌면 귤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주황빛 구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생경하게 느껴졌다. 귤에 관해서라면. 생기 있고 따뜻하고 명랑해 보이기까지는 하는 하나의 구에 관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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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사실 귤에 대해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 제주에서의 시간에 대해 쓰려고 할 때 우리 넷, 그러니까 은솔 대욱 유림 그리고 나의 시간 속에 모두 있던 완전한 동그라미는 무엇일까 하다가. 그건 귤이니까. 나는 귤에 대해 쓸 수밖에 없겠다 하면서 귤의 시간을 떠올렸고 그뿐이다. 나도 대욱이 건넸던 그 시집의 시인처럼 귤로부터 고래의 검푸른 눈으로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그렇게 쓴다면 그건 거짓 중에서도 쉬운 거짓이니까 평생 끝마칠 생각이 없는 이야기처럼 남겨두고. 나는 아무래도 이른 새벽, 은솔의 옆에서 제주의 굽이진 도로를 지날 때 산 사이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동그란 해를 그리면서. 하늘과 산이 신의 아이들처럼 탱탱볼 놀이를 한다고. 그 탱탱볼을 귤-이라고 입으로 주문처럼 뱉어보면서. 또 다른 시간 속으로. 한겨울의 을지로, 작업실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가 써온 글에 대해 말을 고르던. 말 사이에 놓여 있던 귤. 유림의 손을 타고 유림의 가방에서 나와 그곳에 도착했던 그 귤은 어디서 왔을까. 지금은 어디쯤에 있을까. 이곳에서 떠올려보면서. 그때 귤의 맛은 어땠더라. 귤껍질을 까다가. 누레진 손톱 끝을 보다가. 맛은 어쩐지 미각의 영역이 아니라 기억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의 덩어리를 굴려보면서. 그렇게 미끄러진 귤들은 기억의 마구간 속에 우두두 떨어져 새벽의 서리를 기다리는데 서리할 나그네는 도착하질 않고 나의 아름다운 귤들엔 곰팡이가 피었네. 남겨진 기억들은 톡 건드리는 순간 가루처럼 바스러지고 아스라한 녹빛 재들 사이로 말은 영원할 것처럼 끝없는 들판을 달리고 있네.
과거의 상상도, 그때의 나도, 지금의 글과 미래의 기억에도 완전한 구는 보이질 않는다. 사실 귤은 어디에도 없을까. 완전하다는 건 어쩌면 빈 것일까. 손에 컴퍼스가 있다면 좋겠네. 구를 마구마구 그리고 싶어. 욕심인 걸 알지만. 욕심을 버리려는 것도 욕심인 순간에. 마음을 환기하고 싶어 제주에 왔지. 욕심을 버리고 싶었나 아니면 채우고 싶었나. 그런 건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책으로 사람이 만나고, 사람으로 책이 만나는 곳에서 이제는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그 책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나는 우연히 책 속에서 내가 썼던 책 소개글 첫 문장을 읽었다.
2020년 2월, 우리는 망원의 어느 카페에 모여 글모임을 시작했다. 그날 그곳엔 글이 마냥 좋아진 사람과 글을 보여주는 게 두려웠던 사람, 글을 쓰다가 글과 멀어진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이유로 모인 우리는 그날부터 글벗이 되었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써온 글을 함께 읽었다.
그때 그곳에 나와 은솔과 대욱이 있었다고 쓰지 않고 저렇게 썼던 것은 아마도 우리, 그러니까 독자와 작가 사이에 나눌 수 있는 형체 있는 무언가로 글-을 두고. 우리는 그 글의 모양을 저마다 그려보며 글을 매개로 어떤 존재가 될지 자유로히 상상하거나 기억하다가 서로가 되고 다시 잊히고 언젠가 문득 다시 서로가 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라.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두렵고, 그때는 멀었지만 지금은 더 먼 것만 같고, 그래서 때로는 더 좋아지기도 하면서. 그때의 나는 나를 글이 마냥 좋아진 사람이라 여겼는데. 지금 여기의 나는 스스로 미래의 독자가 되어 글을 두고 나를 그려본다. 제주에서 입을 아이보리 색 바지를 고르듯 어떤 이야기가 괜찮을지 이렇게도 저렇게도 쓰고 소리 내어 읽으며 문장의 맛을 본다. 쓰는 건 이상하고 좋고 글을 보여주는 건 싫지만 사람들이 글을 봐줬으면 좋겠는걸요. 글은 나에게 짝사랑 혹은 절대적인 사랑 같기도 해요. 지난 사랑 같기도 하고요. 지웠다가 다시 쓰고. 이 문장이 나아요? 저 문장이 더 나아요? 여전히 모르겠어요. 툭 떨어진 열매를 욱림솔훈에게 건네기도 하고. 어떤 것은 건네지 못하고 다음을 기다리면서. 나무에 맺힌 건 계절이 지나 더 영글 것이고 그러나 오랫동안 가방에만 두어서 무르면 안 되니까 마구간으로 굴러가는 것들 중 딱 한 움큼만큼은 쥔 듯 안 쥔 듯 알맞게 손에 쥐고. 이 책이 좋았는데 이제는 좋을지 혹은 당신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건네보네요,라고 말하는 나의 친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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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향도 맛있는데 카라향도 맛나요. 귤은 건네던 이는 그렇게 말했던가. 소매상은 어쩌면 카라향 재고를 소진해야 하니까 내게 그랬을 수도 있고, 정말 카라향이 맛났을 수도 있고, 별 의미 없이 똑같은 말을 잠시 정차한 손님에게 내뱉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을 곱씹어본다.
천혜향도 맛있는데 카라향도 맛나요.
천혜향도 맛있는데 카라향도 맛나요.
천혜향도 맛있는데 카라향도 맛나요.
천혜향도 맛있는데 카라향도 맛나요.
천혜향도 맛있는데 카라향도 맛나요.
제주에 가서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만났고, 그 열매를 먹고 다시 어떤 글을 쓰고 나누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건 여전히 천혜향도 카라향도 아니지만 그런대로 맛나요. 언젠가 먹고 남은 귤껍질을 말려 감기가 걸린 이에게 따듯한 귤피차 한잔을 내어주며 밍밍 한가요? 그런대로 맛나죠? 하고 시게 웃어 보이고. 우리 사이에 귤이 놓여 있다는 그 사실은 완전함이 아니라 여전함이지요, 하는 기억을 서리하러 간다. 그곳의 귤나무도 자신이 맺은 열매를 때로는 미워할까. 수많은 빛과 흙과 물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이미 써서 세상에 내버린 책처럼 부끄럽게 될까. 말은 반짝이는 주황빛 구를 찾아 영원할 것처럼 달리고 있다. 네게 줄 열매는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달고 네 발굽에서는 어느새 우디 시트러스향이 새어 나와 바람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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