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빗물에 바지 끝단이 서서히 젖고 있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전시회에 관심이 많았는지, 비를 뚫고 얼리버드 티켓까지 사면서 전시를 찾는 모습이 낯설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연인, 가족, 친구, 혼자 온 사람, 그들을 닮거나 닮지 않은 우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미술관 입구에서 욱림훈을 기다렸다. 이렇게나 빠르게 호퍼를 보러 온 사람이라면 호퍼를 잘 알고 좋아하는 팬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팬이 아니라면 부지런하게 얼리버드 티켓을 끊을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일까. 일찍 일어난 새는 피곤하다는 짤을 소비하는 요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 이곳엔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졌다. 남들이 모르는 소식을 먼저 알고 있는 것을 즐거워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얼리버드 티켓으로 전시를 보아도 놓치고 있는 팝업스토어나 전시가 더 많다는 사실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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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서 나눠주는 리플렛에는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호퍼의 작품에 관한 내용이 제법 자세히 담겨있었다. 덕분에 벽에 적힌 글을 읽으려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넉넉한 공간에서 내용을 찾아 읽었다. “줄을 서서 보는 전시가 아닙니다.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합니다.” 입구에서 전시를 안내하는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관람객이 입장할 때마다 입구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게 하기 위한 일 같았다. 하지만 설렘과 기대를 안고 호퍼의 첫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림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3-4년 전 전시를 보러 왔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천천히 순서대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자주라기에는 많지 않고, 무관심하다기에는 종종 다녔던 전시 경험이 쌓여 전시장에서 본 모든 그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로는 힘을 빼고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호퍼의 습작을 가볍게 훑고 정말 마음이 가는 그림 앞에 섰다. 그림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관심이 부족한 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남겨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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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 배우님의 도슨트를 들을 수 있대.” 유림이 도슨트를 빌리는 곳을 보며 말했다. 호퍼와 서울시립미술관, 유지태 배우의 목소리, 분위기가 잘 맞는 세심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넷은 아무도 도슨트를 선택하지 않았다. 욱림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도슨트를 들으면서 전시를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갔었을 때,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어느 전시에서? 역사적 배경이 궁금한 고전 미술 작품의 도슨트를 찾아들었던 것 같다. 전시장 곳곳에 오디오 마크가 그려진 그림 앞에는 꼭 서너 사람이 모여있다. 사람들은 그림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 걸까. 그림을 읽어보려는 마음 같기도 하다. 그림은 해석하는 것이었나, 읽는 것이었나. 느끼는 것이었나. 글에는 “읽다”라는 정확한 동사가 있는데, 그림에는 영화나 음악에도 함께 어울리는 “감상하다", “본다”라는 말이 더 자주 붙는다. 그림에게 꼭 맞는 서술어를 만들어 준다면 도슨트를 듣는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붙일까. 나는 “흐르다”, “잃다”는 말과 비슷한 단어를 붙이고 싶다. 붓질 한 번으로 그리는 그림도 있지만, 붓 자국 위에 또 다른 붓질을 얹어 경계를 뭉그러트리고 만들기를 반복한 흔적을 정확한 단어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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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가 여행에서 만난 자연 풍경을 그린 그림들을 보자마자 기념품샵에서 어떤 엽서를 살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릴 적 수채화를 배웠던 경험이 남아 그림을 볼 때 색을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호퍼의 그림에서는 그림자를 삼킨 것만 같은 노란색, 푸른색, 녹색을 좋아한다. 명도나 채도가 아주 높지도, 아주 낮지도 않은 색으로 그림 안에서 가장 밝은 빛과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대비가 선명한 도시 풍경도 좋았지만, 빛과 어둠을 골고루 머금은 먹먹한 파도와 무른 것 같기도 단단한 것 같기도 한 암석이 아름다웠다. 정말 좋은 그림을 만나면 꼭 눈을 감고 방금 본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림 아래쪽에는 주황빛 바위가 만든 경계, 바다에는 짧은 파도들이 넘실, 하늘에는 구름 두세점. 이렇게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면 다시 그 그림을 떠올릴 때 조금 더 선명한 푸른빛을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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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시장을 다 보았을 때쯤, 주위를 둘러보니 욱림훈이 보이지 않았다. 서로를 알아보기 좋게 복도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전시는 언제나 혼자 보러 가는 것이 편했다. 영화나 공연과 다르게 감상을 적극적으로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오래 보고 싶은 그림에는 오래 머물고, 지나치고 싶을 때는 전시장을 건너뛸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을 때 더 전시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내 속도를 기다리는 것도 불편하고, 내가 기다리는 입장이 되면 그 사람이 충분한 감상을 하지 못할까 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전시를 함께 보는 약속을 만들 때는 그림을 보는 속도가 비슷한 사람과 함께하거나 혼자 보는 것을 택했다. 욱림훈과는 벌써 여러 번 전시를 함께 보았고, 둘이 아니라 넷이 함께 전시를 보니 서로의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르기 때문에 한 곳에 시선이 오래 머물고, 발걸음이 앞서나가고, 멀리서 기다리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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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대욱과 마주쳤다. 대욱은 이전 약속에서 이미 이 전시를 보았다고 했다. 전시장에 어떤 그림이 기다리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같은 전시를 두 번 볼 수 있는지 대욱에게 물었다. 대욱은 좋은 전시가 있으면 여러 번 찾아가 다시 본다고 말했다. “은솔씨는 그런 적 없었나요?” 생각해 보니 같은 전시를 두 번 본 적이 없었다. 같은 것을 여러 번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나 드라마처럼 전시도 두 번, 세 번쯤 다시 볼 수도 있는 건데, 살면서 같은 전시를 두 번 본다는 것은 왜 사고방식에 없었는지 의아했다.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한 번의 감동이면 충분해서, 그림과 마음을 나누는 거리는 딱 거기까지여서, 여러 이유를 떠올렸지만 전시는 한 번 보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의심해 본 적이 없어서인 것 같았다. 또 하나의 당연함을 지우고, 다음에는 좋은 전시가 있다면 어떤 것도 아까워하지 말고 다시 돌아가는 마음을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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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호퍼의 생애와 작품을 해설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호퍼의 대표작을 긴 호흡으로 설명하는 2시간이 넘는 영상에서<뉴욕 영화>라는 작품을 소개하며 호퍼가 영화를 자주 보았다는 짧은 몇 초가 마음에 닿았다. “일 년에 그린 그림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은 2개가 될까 말까 했다. 그림이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 날에는 영화를 보러 갔다.” 이름을 알린 화가가 된, 호퍼의 유명하고 대표적인 그림만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전시는 그의 긴 그림 인생 중에 가장 괜찮은 순간만을 모아보는 전시였다. 당연한 말이면서도 그림에 감탄하고, 그의 매력에 푹 빠지게 설계된 전시장에서는 잠시 잊게 되는 사실이었다. 붓을 내려놓고 영화를 보러 가는 호퍼를 떠올리며 그도 괜찮은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안 괜찮은 날들이 많았다고 생각하니 위로를 건네받은 기분이 들었다. 전시의 시작 부분에서 호퍼의 습작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더 마음에 또렷하게 맺힌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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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전시를 끝내고 어쩌면 전시장 작품을 볼 때보다 더 신중하게, 기념품으로 가져갈 엽서를 골랐다. 진짜 그림은 살 수 없으니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대량 인쇄 기술의 발명에 감사한 순간이다. 이번에는 왠지 하나만 사기에는 아쉬워서, 전시를 보며 마음에 들었던 바다 그림과 현관문 밖으로 길이 없는 숲이 펼쳐진 그림엽서를 샀다. 어떤 엽서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건네기 위해 사지만, 전시에서 산 엽서는 누군가에게 잘 건네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라면 두 개를 사서 하나는 편지로 하나는 기념으로 간직할 수도 있지만, 아주 신중하게 꼭 마음에 드는 그림 한두 점만을 골라서 고스란히 모은다. 다른 기념품은 쉽게 나누지만, 그림엽서에는 소유하고 싶은 욕심을 부린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고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나만의 방법이다. 너무 좋으면 다 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가끔은 가볍게 그거 너무 좋지 말하다가 진심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진심도 있다. 사소한 종이 한 장일 수 있는 대량 인쇄물을 한 장 고르는데 가장 진지하게 좋아하는 감정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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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고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또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밀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욱림훈이지만, 다들 인생의 밀도가 높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사이에 새로운 소식이 하나둘 들렸다. 각자에게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고, 단단한 마음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길을 찾고 뿌리를 힘껏 내리는 모습을 보면 같이 힘을 얻으면서도, 여전히 흐릿한 길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휘청이는 내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좋은 소식에 함께 웃음이 떠나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비바람을 맞은 바지 끝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 길은 어디에 있을까.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지면 방금 산 엽서에 그려진 숲처럼 입구도 출구도 찾을 수 없는 초록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오늘은 이 기분을 일찍 놓아주었다. 우리가 그림을 보는 관점이 다 다르듯이, 전시장에 있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두 다르듯이, 나는 아직 더 보고 싶은 그림이 있는 것일 뿐이다. 옳고 그름이 없는, 그림의 시간마저 뒤섞인 전시장에서 무언가를 깊이 들여다보고 순식간에 지나치기도 했던 오늘처럼.
전시를 보러 갔는데,
호퍼의 그림은 몇 점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그림보다 선명했던 건 그림 바깥의 살아 움직이는 풍경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