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시로 돌아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보자면, 그의 그림에는 늘 고독과 슬픔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우울이 깔려있는 듯하다. 때론 냉소, 관조, 관음의 시선들을 만날 수 있고 이런 특징 덕에 그는 대도시의 고독을 그려내는 작가로 불리곤 한다. 그의 대표작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통해서 관람객들은 인물들의 표정까지 자세히 볼 수 있으나 그림 속 인물들은 그림 밖으로 시선조차 던지지 않고, 더불어 관람객이 들어갈 문마저 교묘하게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꽤나 냉정하게 관람객들을 향해 알린다. ‘ 이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라볼 수는 있지만 진입할 수는 없는 이 아이러니 속에서 그림으로의 입장을 차단당한 관객은 그 주위를 맴돌며 상상을 나래를 펼칠 수밖에 없다. 저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갈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저 인물들은 어떤 감정일지에 대해. 그러나 이런 그의 그림이 전쟁으로 급변하게 변화를 맞은 20세기 미국인들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준 것이 분명하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과 그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도시의 빛과 그림자. 오늘날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안이 그의 그림에 녹아있다. 고요한 불안. 하지만 농축된, 결코 가볍게 휘발될 수 없는 감정. 그의 그림 앞에서 나는 인정하고 말았다. 결국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비록 나는 그의 서명 방식에 대한 규칙을 알지 못하고, 그는 그림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괴팍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고독을 용감하게 전시하는 사람이므로. 그러나 그에 대한 애정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조세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은 뉴욕 미술학교에서 수채화를 전공했다. 명랑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발이 넓었던 그녀는 호퍼와 선후배 사이였고, 오랜 교제 후 결혼하게 된다. 그녀와 결혼한 무렵부터 호퍼의 그림 중 수채화의 비중이 높아졌고,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 역시 수채화였다. 그녀는 호퍼의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의견, 그리고 이후에는 작품의 전시, 판매 등의 일도 기꺼이 맡았다. 호퍼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 나가며 고독과 미스터리로 가득 찬 세계를 완성했을 때, 그 안에는 조세핀의 세계도 녹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세계는 호퍼의 세계 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호퍼의 세계에서 뮤즈이자 그의 아내로 살아간 조세핀.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부의 관계도 호퍼의 그림을 닮아간다. 호퍼의 그림이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수록 조세핀에게 드리우는 그림자는 짙어진다. 예술가로서의 자기표현의 기회를 잃어가며 호퍼의 비즈니스를 담당하게 된 그녀 그녀의 일기를 통해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는데, 호쾌한 성격의 그녀가 호퍼로 인해 답답함을 꽤나 오래 느껴왔다는 것, 그리고 때때로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에 대한 분노도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이 결말이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세계를 잡아먹은 남자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기 때문일까. 결핍을 채워주는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바꾸어놓는지도 모른다. 다소 내성적이고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던 남자와 타고난 활발한 성격으로 그 남자의 세계에 문을 만들어 그에게 세상을 보여준, 혹은 세상에 그를 보여준 여자.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 그녀의 이름은 하늘거리는 나비를 떠오르게 하고, 그건 자유를 사랑한 그녀와도 닮아 나는 호퍼의 두려움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았다. 나비가 떠날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새장이 되어버린 남자. 자유를 갈망하는 나비의 날갯짓은 새장 속에서 나날이 거세지고, 하루하루가 폭풍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나비는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다. 대체 왜?
나는 그 감정의 이름에 대해 생각하며 일부러 한 단어를 피해 멀리 돌아가려 했다. 그럼에도 도착한 이 단어가 나는 여전히 알맞은지 알 수 없어서 머뭇거린다. ‘세계를 부수는 일’과 ‘영원히 머무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사랑이라니. 어쩌면 이미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에드워드 호퍼’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아서 외면했다. 그리고 예술계에 만연한 제2의 에드워드, 제3의 에드워드 ‘들’에게도. 그럼에도 결국 이 단어에 도착하고 만 이유는 얼마 전 읽은 평론가의 글 때문이었다.
이는 신형철 평론가의 책 [인생의 역사]에 실린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에 대한 평론의 일부이다
다시, 이영광의 <사랑의 발명>은 ‘무정한 신 아래에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 시작한 어떤 순간들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다.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생에 중 진실은 것은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곁에 있기를 선택한 그 결심은 사랑이 될 수 있다. 지겹게 싸우면서도 떠나지 않았으므로. 이 사랑은 유효하다. 두 사람은 시간이 나면 함께 연극을 보러 가고 미국을 횡단하며 함께 그림을 그렸다. 조세핀은 호퍼를 에디라고 사랑을 담아 불렀으며, 호퍼의 그림에는 늘 조세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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