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고통 그리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의 아내
1. 고구마
고구마 좋아하시나요? 고구마 하면 저는 우리 집 강아지 별이부터 떠오르는데요. 별이가 고구마를 진짜 좋아했거든요. 근데 오늘은 별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저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요. 사실 전혀 고구마랑 관련 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게 다 고구마다~ 하고 써보려고요.
저는 어릴 때 순종적인 아이였어요.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그런 아이요. 말 잘 듣는다고 다 순종적이라는 건 아니지만, 저는 의심이라는 게 크게 없었달까요? 그래서 착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반장도 하고 전교부회장도 하고 공부도 잘하는 편에 속하는. 근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뭐든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느려서 로봇처럼 어른들이 입력하는 대로만 맞춰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요. 전 융통성이 없는 친구였어요. 친구들이랑 비밀 아지트에 가기로 했다고 쳐봐요. 친구가 새롭고 재밌는 길을 발견했다고 저기로 가자고 막 꼬셔요. 심지어 지름길이래요. 근데 저는 어른들이 그 길 가지마라고 했으면 끝까지 안 가는 그런 친구였어요. 뭔가 나만의 줏대가 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선택지로 입력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던 거죠. 어른과의 약속을 깨는 것은 나쁜 것이고, 나쁜 것은 하면 안된다까지만 입력이 되어있던 거죠. 나쁜 것이 즐겁고 때로는 좋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함께 금기를 깨며 비밀을 만드는 것이 우정을 더 돈독하게 만든다는 것, 단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것, 어른들 역시 수많은 금기를 깨고 비밀을 품으며 살고 있다는 것. 이런 코딩들은 그 당시의 제겐
없었으니까요.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융통성을 잘 부려요. 아니 융통성을 너무 부려서 탈이에요. 살면서 수많은 선택지가 입력되고 스스로에게 어떤 선택지가 맞는지 직접 겪고 택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어릴 때는 융통성이 성격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경험을 통해 쌓은 지혜의 영역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예요. (MBTI 같은 성격 유형 검사에서 말하는 성격의 카테고리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이야기가 산으로 갈 테니… 패스할게요.) (그냥 산으로 가면 안 될까?) (이미 언덕배기 정도는 온 것 같은데.) 그뿐일까요. 삶을 흐르게 하는 유머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항상 학습해 왔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은 기질이나 재능의 영역도 있지만 살면서 학습되는 면도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의 경우는 융통성, 유머, 센스, 눈치 같은 게 모두 배워 온 것들에 가까워요. 저의 재능이라면 그런 걸 보면 잘 흡수하는 편이라는 거고요. 이런 것들을 타고난 친구들, 혹은 잘 배워 온 사람들을 보면서 아 이럴 땐 이렇게 해도 괜찮겠구나, 이런 옵션도 있구나 하면서 체화하는 거죠.
엄마가 어릴 때 저한테 그랬어요. 너는 융통성이 그렇게 없어서 어떻게 하니?!! 그 말이 어릴 땐 상처였거든요. 근데 저요. 지금은 너무 융통성 없는 친구 보면 딱 엄마가 저한테 했던 말을 속으로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나한테 어이없어. 그 시절 엄마가 느꼈던 답답함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혹시 울 엄마도 어렸을 때 똑같은 소리 들었던 거 아닐까요? 할머니한테 물어볼까 봐요.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요. 너무 주눅 들지 말았으면 해서요. 혹시 저처럼 나는 왜 이렇게 유머가 부족할까, 저 친구처럼 센스가 없을까, 혹은 나도 내가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래도 괜찮다고요. 감히 제가 뭐라고 괜찮다고요. (이렇게 쓰고 보니 나한테 하는 말 같기도 하네요.) 음, 그래서 제가 하려는 말은 우리 함께 배우면 돼! 배울 수 있어! 가 아니고요. (배우면 좋긴 하죠. 저도 배우는 중인데 저렇게 쓰고 보니 너무 기만 같아서 사족이 길어지고 있고요.) 사실 저는 그런 거 안 배워도 충분히 괜찮은 세상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배우면 서로가 유연하게 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근데 저는 우리가 가진 각자만의 답답함도 우리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답답함을 아껴주거나 택함으로써 우리 안에 발현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궁금하고요. 답답함을 매력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신선하겠고요. 어쩌면 그거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멋진 유머나 융통성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모든 답답함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 생각하며 말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스스로에게 코딩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는 것 같네요. 아 이 똥글에서 교훈적인 마무리라니… 망했다.) 그래요. 정말 하려던 마무리는요. 우리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정말 고구마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냥 고구마를 만나면 고구마구나~ 하면 된다는 겁니다. 혹시 저의 결론이 고구마 같나요? 네 저는 고구마입니다. 호박 고구마 호박 고! 구! 마!!!!
2. 고통을 즐겨요
저는 고생을 즐기는 편이에요. 근데 고생을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기는 해서요. 이 마음에 대해 한번 얘기해 봐야겠다 싶어서 해 보는 말이에요. 아니면 선택적 고생이가 되고 싶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편한 걸 좋아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고생을 즐기고 감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입니다. 고생을 택하는 이유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여기서는, 내가 고생을 좋아하냐 마냐를 따져볼 때 돈을 쓰는 여행을 기준으로 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편한 여행도 물론 좋지만 고생하는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많이 걷고 새로운 경험도 되도록 다양하게 해 보는 걸 선호해요. 그래서 24살에 혼자 떠난 장기 배낭여행 때도 고생 많이 한다는 남미 대륙을 택했어요. 적은 돈으로 최대한 오래 고생해 보겠다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요즘 유행하는 빈대, 베드버그 있죠. 히피들이 머무는 숙소에 갔다가 베드버그에 물려 한 달 넘게 고생해 봤고요. 가는 동네마다 그 지역의 로컬 푸드를 다 먹어보겠다고 도전하다가 탈이 나서 장거리 버스 안 화장실에서 앞뒤로 동시에 뿜어내는 끔찍한 일도 겪었답니다. 한 번은 고생하다 너무 아파서 버스터미널에 내려 가까운 호스텔까지 죽을 힘을 짜내 들어가 아구아 깔리안떼 뽀르빠보르…(뜨거운 물 좀 부탁드려요…)하고 잠들어서 20시간 자고 깨어난 적도 있어요. 그때는 왜 고생하는 여행이 그렇게 좋았을까요. 평소에는 몰랐던 다양한 선택지를 마주해서? 아니면 저는 그냥 변태일까요?
고생과 고통은 비슷한 듯 다른데요. 고생은 어렵고 고된 일을 겪는 것이고, 고통은 몸이나 마음이 괴롭고 아픈 거예요. 저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먼저 위에서 고생에 대해 얘기한 건, 제가 여행에 있어서는 고통을 좋아해서 고생을 택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고통을 좋아하는 저에 대해서 더 얘기해 보자면요. 저는 어릴 때도 보면 출발 드림팀 같은 예능을 좋아했어요. 고생하고 도전하는 프로그램들.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한계치를 이끌어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그런 거를 보면 왜 이렇게 재밌던지. 제가 막 그런 미션 만들어서 공터 같은 데 가서 프로그램 찍고 주인공 놀이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영화도 인물들이 막 산전수전을 다 겪는 영화 좋아하거든요. 헝거 게임 같은 거 있죠. 저는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도전 중에 하나가 철인 삼종 경기예요. 수영은 어릴 때부터 오래 해왔고 바다수영도 좋아해서 자신 있고, 자전거도 이젠 옛날 얘기지만 나름 자전거 타고 한 달 동안 전국일주도 해봤거든요. 제일 자신 없는 건 달리기인데 이것도 열심히 달리고 고통스럽게 하다 보면 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준비해 보려고 서치를 해봤었는데 저는 시간만 많으면 할 수 있는 스포츠인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자전거 장비부터 대회 준비까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더라고요. 돈도 시간도 없다는 핑계로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심리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언젠가 이런 저를 보고 해 줬던 말이 있어요. 스스로한테 고통을 부여하는 행위가 그 고통을 겪고도 살아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요. 김영하 작가가 쓴 책 <여행의 이유>에서는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어요.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공감했어요. 그 시절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싫어서 도피하는 마음으로 먼 여행을 떠났거든요. 그때는 그게 도피인 줄도 몰랐지만요. 저는 어쩌면 고통을 피하기 위해 고통을 선택하는 것 같기도 해요. 때때로 그것이 나를 갉아먹는 고통이라 할지라도요. 여기서 그 고통이 뭔지 이야기한다면 엄청 길어질 것 같아요 분량이. (혹시 등산 좋아하시나요?) (산을 좀 타보려고 하는데 동네 뒷산은 아니고 미지의 산 입니다만…) (죄송해요.) 오늘은 그럴 수 없으니 가볍게만 얘기해 보자면… 지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볼 수 있겠는데요. 나는 근원적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주변적인 고통을 택하는가? 그럼 이제 나의 근원적인 고통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의할 필요가 있겠죠? 근데 그걸 정의할 수 있다면 근원적인 고통이라 할 수 있나 싶기도 하고요. 무언가를 정의할 수 없는데서 오는 고통들도 있는 것 같고, 무언가를 정의함으로써 생겨나는 고통들도 있거든요. 지금도 고통받는 나… 아무튼 이런 가벼운(정말?) 고통부터 나의 신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다양한 고통들이 있는데요. 그런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고통과 쾌락이 맞닿아 있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어떤 고통에 일시적으로 몰입하게 되면 나의 자아를 그 순간 잊게 되면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있고요. 그러니까 이 알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때로는 고통 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저는 그래서 요즘 이 고통이라는 친구를 어떻게 좋은 친구로 함께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려고 해요. 나름 잘 지내왔던 것 같은데, 이렇게 친구로 명명하는 건 처음이네요. 더 긴 이야기는 오프더레코드라 여기까지 하고… (이거 이미 오프더레코드 아니었어?) 지금은 추위라는 고통이 있으니 아주 든든한데요. 저는 추위를 싫어하는 편인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조금 더 추위가 좋아졌어요. 고통은 몸과 정신이 환기되는 기분일 수도 있겠구나 싶거든요. 오늘은 자기 전에 집 환기를 시키면서 추위를 한번 새롭게 감각해 봐야겠어요. 이상 아주 배부르고 등 따신 소리였습니다.
3. 나의 직업은요..라고 제목 붙이고 그냥 하고 싶은 말 하기
보통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면 그 사람의 전공이나 직업, 나이, 사는 곳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죠. 저도 그래서 오늘 그런 이야기를 해볼까 싶기도 했어요. 근데 저는 전공이랑은 지금 전혀 다른 바운더리를 살고 있고요. 나이는 원래 나이보다 어리게들 봐주시는 편이라 그냥 좋고요. 사는 곳은 말해도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고요. 물론 각 주제마다 할 얘기야 많지만 이미 제 메일 분량이 엄청 넘어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제 직업에 대해서만 간단히? 얘기해 볼까 해요.
근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뚜렷한 직업이 없습니다. 뭐 스스로 살아온 삶에 대해서 잘 받아들이고 제 방식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사회 속에서 제 직업은 뭡니다!라고 쉽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직업이 지금의 저한텐 없거든요. 물론 그전에 차와 공예품을 다루는 공예샵에서 매니저를 해보기도 했고, 향수 브랜드에서 세일즈를 해보기도 했어요. 그때의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지금은 프로모터라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호텔이나 행사장, 백화점 등에서 갖춰 입은 다음, 손님을 의전하거나 필요하다면 도슨트, 안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에요. 보통 사람들에겐 조금 생소하지만 이 일을 오래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고 엄연히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직업은 제 자아가 반영된 느낌은 아니에요. 저에겐 돈과 경험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죠. 물론 직업이라는 게 꼭 자아가 반영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전 그러고 싶고 제 자아가 반영된,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으면서, 저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을 업으로 가져본 적은 아직까지 없어요.
나에게 그런 일이 뭘까 하면서 지금까지 도달한 답은 작가인데 좀 더 정확히 분류하면 소설가, 그리고 동시에 작사가예요. 소설을 처음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삼 년이 더 된 일인데 제 안에 일어나는 세계를 글로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고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욕구에 비해 실력과 성실함이 부족하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좀 속상해요. 일 다니면서 나도 멋진 작가들처럼 새벽에 일어나 매일 글 2시간씩 쓰고 출근하고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렵더라고요. 소설을 나름대로 쓰기도 하지만, 제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기 위해선 제 삶이 더 영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냥 살면서 소설을 놓지 말고 꾸준히 쓰자가 지금의 제 마음인데 그럴려면 잔고도 충분히 Account Care! (걸그룹 트리플에스 Girl’s Capitalism 속 가사예요.) 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생각한, 내가 노력하면 잘할 수 있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이 작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케이팝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어릴 때 MR을 가져와 가사를 새롭게 쓰고 부르는 취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거든요. 그때는요 제 안에 빈지노 이센스가 살고 있었습니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많지만, 제가 생각하는 케이팝의 매력 중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맥락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들이에요. 지금 보면 되려 현재보다 혁명적이고 과감함이 넘치는 1세대 아이돌 가사부터 이제는 오그라들기도 하지만 저희 세대가 떼창하고 즐겼던 2세대 아이돌 가사, 으르렁대고 빨간 맛이던 가사를 지나, 나는 달라! 내가 최고야! 를 외치는 당당한 가사들, 더 쉬워지거나 어려워지거나 뻔해지거나 예측할 수 없거나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사들까지. 그 가사들이 사람들을 남모르게 위로하기도 하고, 이 가사는 좋아! 혹은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어느 순간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에 자리하고, 변하는 세대에 걸맞게 또 새로운 느낌의 가사들이 세상에 나오고. 그런 것들이 저는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죠. (성공기가 나올 것만 같은 흐름인데요. 아닙니다.) 작사를 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잘 기르면 나도 멋진 작사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래서 올여름부터는 작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에 실제로 학원을 통해 기획사의 곡을 받아서 시안 작업을 하고 있어요. 매 순간이 공모전인 치열한 구조고, 멋진 수많은 분들과
함께 곡을 받아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지만 동시에 언젠가 작사가로서 꼭 데뷔할 거야! 하는 마음으로 매번 들어오는 곡들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작사도 하고~ 이것만으로도 하루가 꽉꽉 들어차있어요. 데모곡은 급하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마감 때문에 밤을 거의 새우고 출근하는 일도 달에 몇 번씩 있고, 다 잘하려다 다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슬프고 무기력할 때도 있고요. 그래도 대체로 이런 삶이 재미있어요. 글쓰기나 작사에 몰입을 하는 순간이 특히 그래요. 지금의 저에겐 먼 미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케이팝과 문학을 만나 시너지를 내는 일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둘 다 시대의 흐름에 아주 민감한 분야인데 성격은 많이 다르잖아요. 서로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단계까지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작품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언젠가부터 품고 있어요. (되게 거창하게 얘기했는데 막 스트릿 문학 파이터 나가고 케이팝 미션하고 그런 상상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어떤 글이든 써보고, 다 쓰면 가사 시안도 써야 하고, 근데 아침이 밝으면 또 출근은 해야 하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허허. 분량 어떡하지. 간단히라고 해놓고 이렇게 써버렸어요. 근데 이것도 나름 명료하게 말하려고 노력한 거랍니다. 오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열심히 말하려고 마음먹었으니까 분량 조절 대실패더라도 모르는 척 눈 감아보려고요.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나 이런 면도 있고 요즘 이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이 메일에서 분출된 거죠. 여러분들에게 저의 소설집도 제가 참여한 가사들도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대체로 열심히 살아보려고요. 가끔은 이 세상 정말 진취적으로 게으른 사람이 멋지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생에서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근데 몰라요. 또 변할지. 다 싫어질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다 해낼지..! 이런 내가 싫다가 좋다가 매번 그래요. 이런 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랍니다. 그러세요 그럼~ 하고 소리 내어 제 글을 끝내주시면 되고요.
여기까지 저의 <고구마, 고통 그리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의 아내>를 다 읽어주셨다면 여러분은 이 메일링 서비스 제목처럼 1004…☆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번 글은 평소 제가 메일에서 보여드리던 글의 느낌과는 좀 다르기도 하고, 저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거든요. 근데 이런 내 얘기도 해볼게 하는 마인드로 편하지만 성실하게 써 본 글인 만큼 그 마음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으면 하고바라봅니다.
겨울이니까 고구마도 먹어줘야 하고, 추위는 고통스럽고, 연말이 되면 누군가에게 막 하고 싶어지는 얘기가 생기기도 하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요즘을 사는지 알려주고 싶다면 언제든 어떤 경로든 답을 해주셔도 좋아요. 제가 티엠아이를 흩뿌린 만큼은 감수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산타가 보내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잘 읽어볼게요. 올 한 해도 저희의 글을 종종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부디 따뜻한 연말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히계세요:) |